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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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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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제1칙]조주무자 -

 

조주 종심 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하였다.

“없다(無)!”

 

<평창>---------------------------------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통달하는 데 뜻이 있고 오묘한 깨달음은 궁극에 마음 길이 끊어져야만 한다. 조사관을 꿰뚫지 못하고 마음 길을 끊지 못하면 이는 모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와 같다. 말해 보라. 어떤 것이 조사관인가?

다만 이 ‘무(無)’자 하나가 종문(宗門)의 제일 관문이다. 이를 가리켜 선종 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 한다. 터득한 이는 친히 조주 선사를 볼뿐만 아니라 역대 조사와 손잡고 같이 행하고,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것이니. 이 어찌 경쾌하지 않으랴. 관문을 꿰뚫고자 하는 자 있는가, 없는가?

삼백육십 골절과 팔만사천의 털구멍 등 전신에 의단(疑端)을 일으켜 밤낮으로 이 ‘무(無)’자를 들어 참구(參究)하되 허무한 알음알이를 짓지 말 것이며, 있다 없다는 알음알이도 짓지 말고 불타는 쇳덩이를 삼킨 것같이 토하고 토해도 나오지 않게 하여 종전의 모든 다른 생각이 없이 오래오래 두고 순숙(純熟)하면 자연히 안팎이 하나가 된다. 이 때는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꾸는 것처럼 혼자만 알다가 문득 깨달아 분명하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듯하여 관우장군의 큰 칼을 빼앗아 손에 쥔 것과 같으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 생사에 자유자재하며 육도사생(六道四生) 가운데 재미있게 노는 그대로가 삼매(三昧)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이 ‘무(無)’ 자를 들되 만약 끊어지지 않게 되면 한 점 법의 촛불을 밝히기에 좋은 때이다.

 

<송>---------------------------------

개의 불성이여

온전한 제시 분명한 가르침

있다 없다 사이에 머뭇거리면

목숨까지 잃으리라

 

-[第1則]趙州無字 -

趙州和尙,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 把手共行, 眉毛廝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麽.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毫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撕.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如呑了箇熱鐵丸相似, 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岸頭, 得大自在, 向六道四生, 中遊戱三昧. 且作麽生提撕. 盡平生氣力擧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一點便著.

頌曰. 狗子佛性, 全提正令, 纔涉有無, 喪身失命.

 

 하늘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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