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름[捐廩] 곡물(穀物)을 기부(寄附)하는 일을 말한다.

연릉[延陵] 춘추 시대 오왕 수몽(吳王壽夢)의 넷째 아들로 연릉에 봉해진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오왕 수몽이 일찍이 계찰의 어짊을 알고 그에게 왕위(王位)를 전하려 하였으나, 계찰이 끝내 왕위를 받지 않았다 한다. 계찰은 사신이 되어 상국(上國)을 두루 다니면서 어진 사대부(士大夫)들과 교유하였고, 특히 노() 나라에 사신 가서는 주() 나라의 음악을 보고 열국(列國)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을 알았었다고 한다. <史記 卷三十一>

연릉계자[延陵季子] 오나라의 공자 계찰(季札)을 말한다. 춘추 때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다. 연릉(延陵)에 봉해져 연릉계자(延陵季子)라고 부른다. 원래 수몽이 오왕의 자리를 계찰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형이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수몽이 그 자리를 장자인 제번(諸樊)에게 물려주면서 이후로는 오나라의 군주 자리는 부자상속 대신에 형제상속을 행하여 계찰에게 왕위가 돌아가도록 유언을 하고 죽었다. 제번이 그 부왕의 뜻을 받들어 그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찰은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오왕의 자리는 제번에 이어 이매(夷昧), 여제(餘祭)등으로 차례로 형제간에 이어졌다. 여제 4년 기원전 544년 계찰은 여제의 명을 받들어 노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례(周禮)를 살펴보고 그 뜻을 모두 알고 있어 노나라 사람들의 공대를 받았다. 다시 제(), (), 당진(唐晉) 등의 나라를 방문하여 당시의 현인들로 이름이 난 안영(晏嬰), 자산(子産), 숙향(叔向) 등이 명현(名賢)들과 교유를 맺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후에 중국 역사의 흐름은 대체적으로 계찰이 예견한 대로 진행되었다. 여제가 죽자 오왕의 자리는 그의 아들 왕료(王僚)가 이었다. 기원전 512년 왕료의 명을 받들어 당진에 사신으로 가 있던 중에, 왕료가 제번의 아들인 공자광(公子光)에 의해 살해되었다. 공자광이 오왕 합려(閤閭). 계찰은 귀국하여 합려에게 사신으로 갔다온 일을 복명한 후에 왕료의 묘를 찾아 곡을 올렸다. 후에 공자(孔子)가 친히 계찰이 묻힌 무덤을 찾아가서 유오연릉계자지묘(有吳延陵季子之墓)’라고 비문을 썼다. 계찰은 공자보다 한 세대 전 사람이다.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의 봉호(封號)이다.

연릉악[延陵樂] 연릉은 춘추 시대 오() 나라 계찰(季札)의 봉호. 계찰이 일찍이 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 나라의 훌륭한 음악을 보고서 열국(列國)의 치란 흥망을 알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三十一>

연릉지검[延陵之劍] 연릉은 춘추 시대 때 오() 나라의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계찰은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작은 아들로 어질다는 명성이 있어서 수몽이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사양한 채 연릉으로 가서 머무르자 연릉에 봉하였으므로 흔히 연릉계자(延陵季子)라고 불리운다. 일찍이 진() 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서() 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 나라의 임금이 계자가 차고 있는 칼을 보고는 갖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진 나라의 사신이 함께 있었으므로 계자가 즉시 칼을 풀어 주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주기로 마음먹었다. 계자가 진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 나라를 다시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서 나라의 임금이 죽은 뒤였다. 이에 계자는 서 나라 임금의 무덤 앞에 있는 나무에다가 칼을 걸어 놓고 떠나갔다고 한다. <新序 節士>

연릉현검[延陵懸劍]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한다. 연릉은 춘추 시대 오() 나라 계찰(季札)의 봉호이다. 계찰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 나라 임금을 잠깐 찾아보았는데, 서 나라 임금이 계찰의 보검(寶劍)을 보고는 그것을 갖고 싶어 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하였다. 그러자 계찰은 마음속으로 그 칼을 그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떠났었는데, 그후 계찰이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곳에 들르니 서 나라 임금이 이미 죽었으므로, 계찰이 내가 처음에 마음속으로 이미 허락한 것이니, 그 사람이 죽었다 해서 내 마음을 변할 수 없다.”하고, 그 칼을 그의 묘수(墓樹)에 걸어두고 떠났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三十一 吳太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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