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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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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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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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자[驪興子] 민이길(閔頤吉)의 본관이 여흥이므로 그를 가리킨다. 이름은 민유경(閔有慶)이다.

여희곡읍[麗姬哭泣] 미인인 여희가 큰 소리로 슬피 운다는 뜻이며, 시집가기 싫어하던 일이 시집간 뒤에는 울었던 것을 매우 후회했다는 것으로 한 치 앞을 못보고 걱정하는 것에 비유하여 사용한다.

[] 추현 동남쪽에 있었던 산 이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 이 산에 올라 자기의 공적비를 세웠다.

역간애제한[易簡愛虀汗] 송나라 소이간(蘇易簡)에게 임금이 묻기를 무슨 음식이 맛나는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때에 따라 일정하지 않습니다. 신이 한 번은 술을 취하게 먹고 새벽에 목이 마른데 마실 것이 없어 뜰 앞에 부추를 담근 독이 있기에 그 즙을 마셨더니 그 맛이 제일 신선하고 좋았습니다.”라 하였다.

역개[酈疥] () 나라 역이기(酈食其)의 아들로 고양후(高梁侯)에 봉해졌다.

역개월정[曆改月正] ((() 3대 이래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서(曆書)의 정월이 달라졌다.

역관법[役官法] 고려 시대 추밀원 당후관(樞密院堂後官)이나 문하록사 권무(門下錄事權務) 중 녹()을 받는 자 이상으로서 은() 60~70근을 바치면 참직(參職)을 제수하던 제도이다. 언제 창설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 와서 곡식이 귀해져 보임(補任)을 원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의관 자제(衣冠子弟)들에게 강제로 하게 했으므로 사직하거나 도망하는 자까지 생기게 되어 충선왕(忠宣王) 3년에는 폐지하였다.

역괴[歷塊] 역괴는, 마치 흙덩어리를 뛰어넘듯 순식간에 먼 길을 치달린다는 뜻으로, 천리마(千里馬)와 같은 준족(駿足)을 가리킨다.

역근전[役根田] 군보(軍保)가 경작하는 전지(田地). 군보는 즉 정병(正兵)을 돕는 조정(助丁)인데, 이조 후기에는 양병(養兵)의 비용에 쓰기 위하여 군보에게 역()을 면해 주고 그 대가로 벼나 곡식을 바치게 했다. 그러다가 군보가 다른 곳으로 이사할 때에는 자기 전지를 그 마을에 남겨 두어 마을 사람으로 하여금 베나 곡식을 대신 바칠 수 있게 하였다.

역근전[力根田] 병역의 대가로 내는 군포(軍布)의 밑천으로 삼는 토지. 병역 의무자가 죽거나 이사를 가면 그 마을에서는 군역이 면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군정(軍政)이 문란해졌을 때 아전들이 실제 없는 사람에게도, 살고 있는 또는 살아 있는 것으로 군적에 그대로 올려놓고 이웃에게 군포를 거두었다. 그러므로 이사를 가거나 죽더라도 얼마간의 토지를 남겨 두었는데 이를 역근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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