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자[崦嵫] 태양이 들어가 쉰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이다.

엄자릉[嚴子陵] 자릉(子陵)은 동한(東漢)의 고사(高士)였던 엄광(嚴光)의 자()이다. 그는 일찍이 광무황제(光武皇帝)인 유수(劉秀)와 함께 유학(遊學)했었는데, 광무가 황제가 되자 그는 변성명을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광무는 백방으로 찾아서 데려다가 대우를 잘하였으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니, 광무는 웃으면서 미치광이 옛 버릇 그대로구나!”라고 하였다. 한 번은 궁중에서 함께 잠을 자는데 광무의 배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아침에 태사(太史)어젯밤 천상(天象)을 관찰해보니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범했습니다.”라고 하니 광무는 웃으며 내가 옛 친구 엄자릉과 함께 잤다.”고 하였다. 그는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둔하였다. <後漢書 卷八十三 嚴光傳>

엄자산[崦嵫山] 엄자산은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곳으로 해가 져서 들어간다고 한다. 만년(晩年) 또는 노년(老年)의 비유로 쓰인다.

엄정[嚴桯] 길을 떠날 차비(差備). 또는 기한이 정하여져 있는 여행길이라는 뜻이다.

엄조[嚴助]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22년에 죽은 서한의 관리로 사부가(辭賦家)이다. 원래 장() 씨였으나 후세 사람이 한명제(漢明帝)의 이름 장()을 휘()하여 엄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회계(會稽) 오현(吳縣) 출신이다. 사부가 엄기(嚴忌)의 아들로 한무제 원년 기원전 140년 책문으로 현량(賢良)을 뽑을 때 무제의 눈에 띄어 중대부로 발탁되었다. 조정의 공론을 주도하여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3년 민월(閩越)이 동구(東甌)를 쳐들어가 포위하자 그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회계의 군사를 발하여 바다로 나아가 동구를 구했다. 6년 남월을 안무하기 위해 남월에 들어가 남월왕을 설득하여 그의 태자를 데리고 와서 황제에게 조현을 올리게 했다. 얼마 후에 회계태수가 되었다가 다시 시중(侍中)이 되어 황제의 측근에서 모시며 부()와 송() 수 십 편을 지었다. 원수(元狩) 원년 기원전 122년 회남왕과 형산왕이 모반을 획책했을 때 평소에 맺은 회남왕과의 친교관계 때문에 연좌되어 주살되었다. 한서 예문지에 그가 지은 사부 35편이 전해진다.

엄조[嚴助] 한 나라 회계(會稽) 오현(吳縣) 사람이다. 무제(武帝) 때 중대부(中大夫)로 있으면서 항상 대신들과 국정을 논의하였으며, 동방삭(東方朔사마상여(司馬相如오구수왕(吾丘壽王)등과 함께 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모반사건 때 유안과 사이가 좋았다는 이유로 사형 당했다.

엄종[嚴終] 엄안(嚴安)과 종군(從軍)이 한 무제(漢武帝) 때에 문학(文學)으로 뽑혀서 조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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