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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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종이책전자책

 

그리운 것은 다 저 너머에 있고

소중한 것은 다 저 너머로 가네

애써 또 다른 저 너머를 그리다

누구나 가고 마는 저 너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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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梁鴻] 동한(東漢)의 고사(高士) 양홍이 산수 좋은 회계산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처음 맹광과 결혼했을 때 맹광이 성장(盛裝)을 한 것을 보고 일주일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다가 농사꾼 차림을 하고 나오자 크게 기뻐했으며, 이후 서로들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며 살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逸民傳 梁鴻>

양홍[梁鴻] 후한(後漢) 장제(章帝) 때의 은사. 자는 백란(伯鸞). 아내 맹광(孟光)과 함께 패릉산(覇陵山)에 은거하여 농사와 길쌈으로 일을 삼았다. 장제가 그를 찾았으나 성명을 바꾸고 오() 나라로 떠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後漢書 逸民傳>

양홍[鑲紅] 양흥은 청 태조(淸太祖)가 창업(創業)하던 당시에 공로가 있었던 사람의 자손들로 조직한 병제(兵制)로서 팔기병(八旗兵)의 하나이다.

양홍맹광[梁鴻孟光] 모범이 될 만한 부부간을 비유한 말. 양홍은 후한 때의 은사(隱士)이고 맹광은 바로 그의 아내인데, 특히 맹광은 부덕(婦德)이 훌륭하여 남편을 잘 섬겼다 한다. 양홍은 본디 가난한 선비였는데, 맹광이 부유한 가정에서 시집을 와서 처음에 비단옷을 입고 화장을 하곤 하므로, 양홍이 말하기를 나는 거친 베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깊은 산 속에 은거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그대는 비단옷을 입고 분단장을 하니,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자, 맹광이 대번에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베옷을 입고서 양홍의 앞에 나타나니, 양홍이 말하기를 진정한 양홍의 아내이다.” 하고는, 함께 패릉산중(霸陵山中)으로 들어가 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八十三>

양홍오희[梁鴻五噫] 후한(後漢) 때 양홍이 경사(京師)를 지나면서 오희가(五噫歌)를 지었다. 오희는 5가지 슬픔을 말한 것으로 저 북망(北芒)을 오르매 슬프고, 제경(帝京)을 돌아보매 슬프고, 궁실(宮室)이 높으매 슬프고, 백성들이 수고하매 슬프고, 아득하여 다하지 아니하매 슬프다.”라고 하였다.

양홍처[梁鴻妻] 양홍은 동한(東漢) 때 사람인데 자()는 백란(伯鸞)이다. 집은 가난하나 절의를 숭상하고 모든 책을 박람하여 정통하였다. 같은 고을 맹씨(孟氏)의 딸 맹광(孟光)이 몹시 못생겼는데 31세가 되어도 결혼하려 들지 않자 부모가 연유를 물으니 양홍같이 훌륭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양홍이 이 말을 듣고 그에게 장가들었는데 장식이 대단히 화려하니 7일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이에 퇴계(椎髻) 포의(布衣)로 앞에서 일을 하니 양홍이 기뻐하며 참으로 양홍의 아내다.”라고 하였다. 뒤에 부부가 함께 패릉 산중에 들어가 손수 농사짓고 길쌈하였다. 그러다 황제의 부름을 피하여 오()로 가서 고백통(皐伯通)의 행랑에서 삯방아를 찧으며 살았는데 아내가 밥상을 들고 올 때는 눈썹 높이와 가지런하게 들어 공손한 예를 다하였다. 남편에게 공순하게 예를 다하고 남편과 해로한 여인을 양홍의 아내[梁鴻妻]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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